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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12일 VA 개봉, 온라인 이벤트 한국항공권 제공

첫 장면부터 이어지는 몰입감과 명배우들의 열연, 여운까지 갖춘 영화로 호평받는 영화 ‘1987’이 오늘(12일) 워싱턴지역 등 북미 전역에서 개봉한다. ‘1987’은 한국에서 11일 기준 누적 관객 수 475만 6042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단체관람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용산 CGV를 방문해 영화를 관람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마음에 울림이 가장 컸던 대사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였다”며 “함께 힘을 모을 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각 지역 지자체도 단체관람에 나서는 등 청소년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북미 전지역 개봉 기념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이벤트도 눈길을 끌고 있다. ‘내 기억 속의 1987년’이란 주제로, 1987년도에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어난 사연을 이메일(info@cjentamerica.com)로 응모하면, 당첨자에게 아시아나 한국 왕복권(미국 주요도시 출발)을 제공한다. 영화는 버지니아 리갈 페어팩스 타운센터 영화관에서 상영한다. ▷참고: WWW.CJ-ENTERTAINMENT.COM ▷장소: 4110 West Ox Road Fairfax, VA 22033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

2018-01-12

[역사의 창] 영화 '1987'이 주목받는 이유

#. 영화 '1987'이 화제다. 대통령도 보고 여야 정치인들도 앞다퉈 보고 있어서다. 좁게는 박종철, 이한열 두 젊은 대학생의 죽음이 소재다. 넓게 보면 1980년대 시대적 질곡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 있게 행동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재미가 있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물론 극적 완성도를 위해 과장되고 미화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우리 세대의 집단 경험을 다른 어떤 객관적 서술보다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는 미덕이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 불과 30년 전 이야기지만 1987년은 이렇게 역사가 되고 장준환 감독은 또 하나의 역사 기록자가 되었다. #.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을 예전엔 사관(史官)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사관은 왕조실록을 비롯한 모든 국가 공식 기록물의 초고를 작성하던 1차 기록자였다. 벼슬 품계로 치면 정7품에서 정9품으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금의 모든 언행을 비롯해 나라 안팎 대소사와 인물의 시비득실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요직이었기 때문에 선발 절차는 매우 엄격했다. 첫째 조건은 과거 시험의 문과 급제자로 재(材)·학(學)·식(識)의 삼장지재(三長之才)를 고루 갖춘 인재여야 했다. '재'란 문장력으로 역사 서술 능력, '학'은 해박한 역사 지식, '식'은 현실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둘째는 출신과 가문에 흠이 없어야 했다. 첩의 자손인 서얼은 절대 사관이 될 수 없었다. 친가와 처가 그리고 조상 중에 부정축재자 같은 범죄자가 있어도 자격 미달이었다. 본인 스스로의 강직한 성품과 정직성도 중요했다. 사관으로 천거되었다가도 마음이 사특하다거나 정직하지 못해서, 혹은 공론에 저촉되는 언사를 일삼았다는 이유로 임용이 거부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다롭게 제수되는 자리였던 만큼 사관이 되면 가문의 영광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남다른 긍지와 사명감을 가졌다. 게다가 사관의 기록은 임금도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그 자부심과 기개가 오죽했을까 싶다. 우리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기록유산이 된 것은 그저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후세에 오늘을 판단할 사료를 남기는 일이다. 그만큼 엄중해야 하고 책임감도 수반되어야 한다. 영화감독이나 작가, 기자 등 세상 모든 기록자들이 진실과 객관이라는 숫돌에 끊임없이 자기 양심을 갈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1987'은 우리를 30년 전으로 다시 데려간다. 동시에 작금의 상황도 돌아보게 만든다. 당시 대학생뿐 아니라 기자나 검사 등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공의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꾸며 불의에 맞섰을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얼마나 그런 세상이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언론은 더 비겁해졌고, 정치인들은 더 야합에 능수능란해졌으며, 기득권 지키기는 훨씬 더 치밀해지고 견고해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대학살 같은 무자비한 악행을 자행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이상한 광신도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다. 영화 '1987'은 그런 악의 평범성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런 것이 영화감독의 존재감이고 현대판 사관으로 불리어도 무방한 이유다. '1987'은 개봉 3주 만에 5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마침 LA와 OC에서도 절찬 상영 중이니 우리 독자들도 한 번씩 보면 좋겠다. 이종호 OC본부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8-01-11

[특별 기고] 영화 '1987',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나의 이야기

애틀랜타 중앙일보는 영화 '1987'의 12일 애틀랜타 개봉을 앞두고 격동의 그 시절을 추억하는 한인들의 사연을 모집했다. 주로 대학생이나 청년으로서 민주화시대를 보냈던 이들이 사연을 보내왔다. 영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6월 항쟁을 다룬 상업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세상이 좋아졌음을 절감하는 이도 있었고,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악몽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어떤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저편으로 밀어낼 수가 없다. 이들이 기억하는 그 시대는 잔인했고, 역사의 물결은 거셌으며, 젊은이들의 고민은 치열했다. 이들은 이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영화속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뜨거운 사연을 각색없이 소개한다. 1987년 6월 종로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하던 가운데 맞은 6월 항쟁.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명동으로 나아가 감히 한마디를 내지 못하고 긴장하며 두리번 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재수를 거쳐 서울대 캠퍼스에서 공부하던 4년은 공부를 한 것인지 뭔지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이었죠. 늘상 있던 학회와 가투, 교투. 학생회관에 늘 전시되어있던 광주민주항쟁의 처절했던 이미지들, 항상 스피커로 아크로를 울리던 총학의 집회. 이 모든 것이 4년동안의 캠퍼스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눈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상황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고민하기에 앞서 시대가 던져준 고민들의 치열함과 깊이가 너무나도 무겁고 막중하였던 4년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지던 대학생들의 분신과 죽음을 통한 저항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암울하고도 비장한 시대 상황이었지요. 불의한 정권에 볼모가 된 국가와 주권자인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없어서 서로 대치한다는 역설적이고도 슬픈 분노의 상황.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대학생으로서 살아간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은 그 이후의 제 삶을 정향시킨 세례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수면 깊이 잠겨 있던 모든 감정과 감상들을 다시 현재로 소환해 옵니다. 1987과 같은 영화는 하나의 영화로 보기에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불러 일으킬 줄 알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고 볼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통해 보게 될 스크린 너머의 이야기의 본체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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